두 사람의 반지를 맞췄습니다.

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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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경이의 연속인가 봅니다. 딱히 결혼에 욕심 없이 살았는데 평생 인연을 만난 데다, 절대 부산을 떠나지 않으려던 결심을 고쳐먹고 늦은 나이에 서울로 가게 되니 말입니다. 이런 삶은 한 번 살아봐도 모를 것만 같습니다. 이번 생이 처음인 게 아니라, 몇 번을 살아도 생은 매번 처음인 건지도요.

각설하고. 두 사람의 반지를 맞췄습니다. 예물의 성지 종로에는 예물매장이 심각하게 많았기에 나름의 검색 실력을 발휘해서 매장을 선정했습니다. 무려 일곱 군데를 다녔고 방문한 마지막 매장이 이곳 "일리아스"였어요. 

마지막이라 픽이었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꼭 그게 다인 건 아닙니다. 매장마다 사람을 대하고 물건을 파는 전략이 있었는데 그것이 맘에 들지 않는 곳도 있었고, 귀금속이라는 게 볼 땐 좋다가도 돌아설 땐 애매해진다는 게 실감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들어간 마지막 매장이었죠. 그 이전 매장까지에서 거의 볼 것은 다 봤다 싶어진 우리는, 일곱 번째로 들어가는 이 일리아스가 무난한 정도라면 여섯 번째 매장의 최종픽으로 가자 하는 마음으로 들어섰습니다.

매장 검색까지가 곧남편씨로서 제 역할이었다면 반지 선택은 곧아내씨의 몫입니다. 물론 제 역할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죠. 적절한 동의로 곧아내씨가 지치지 않게 힘을 북돋아주는 것, 외로운 선택으로 느껴지지 않게 옆에서 관심을 놓지 않는 것에 신경쓰며 옆에서 이런 저런 말을 거들었습니다.

하지만 결정하는 사람만큼 몫이 클 수 있을까요. 많이 볼수록 기억은 희미해지고 감각도 믿기 어려워지는 게 사람인지라 결정을 빨리 내리고 싶기도 하겠지만, 그런 빠른 결정은 "섣부르다"라는 단어에 휘둘릴 것이 무섭기도 한 부분이 있어서 더 어렵기만 합니다. 두 번 세 번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더 그렇기도 했고요.

일리아스에서는 신중히 고를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매장 안에서 보기도 했고 밖으로 나가서 자연광에 비쳐보기도 했죠. 이호원 부장님은 번거로워 하는 내색 하나 없이 잘 신경써 주셨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이, 예산이 얼마냐를 먼저 물어보기 전에 무엇이 마음에 드느냐로 계속해서 상담을 이어갔던 점입니다. 전자는 효율적이고 경제적이죠. 즉, 일하는 사람의 헛수고를 덥니다. 금액에 맞지 않는 것을 권해주며 시간을 쓰지 않아도 되니까요.

반면 후자는 좀 더 감성적이고 배려가 느껴집니다. 추천이 빗나가면 서로 괜히 맘 상하고 헛수고가 될 우려는 있지만, 대신 고르는 사람이 환상을 돈에 묶지 않게 해 줍니다. 그런데 결혼이라는 게 그런 게 아닐까요. 지금 우리가 가진 것에 환상을 묶을수록 더 빠르게 지치기 마련이죠. 그런 배려는 참 인상적입니다. 여전히 우리는 쓸 수 있는 선을 생각하며 신중해야 했지만, 마음은 자유로웠습니다.  저는 그게 좋았습니다.

그렇다고 마음에 들지 않는 반지를 고르지도 않죠. 일곱 군데를 다녀서 마지막으로 선정한 만큼 마음에 쏙 드는 반지였습니다. 곧아내씨는 나중에 말해주더군요. 자기가 원하는 요소가 모두 다 갖추어진 반지였다고요. 

그렇게 고른 반지였습니다. 곧아내씨가 우리의 이 늦깎이 만남에 대해서 "이렇게 만날 인연이었기에 지금 만난 거다"라고 종종 말하곤 했어요. 저는 이 반지가 그런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소중한 시간을 내어 소중한 반지를 골라 주신 이호원 부장님께 다시 한 번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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